요즘같은 때가 걷기 딱 좋은 날씨이다. 이쪽은 오히려 회사원들이 많은 지역이여서 주말에 그렇게 붐비지도 않는다. 물론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ㅎㅎㅎ 하지만 한강공원이나 연남동 등에는 너무 붐벼서 그런지 서울엔 한가로히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을 찾기 어렵다.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 산책로는 그나마 고즈넉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요란한 간판도 없고 시끄러운 음악이나 홍보전단지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오래된 교회와 극장들로 둘러쌓여 있어 가만히 걷고 있으면 바람에 부딪는 나무소리에 귀기울여진다.

이번에는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중명전을 구경해 보았다.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9:30~17:30(입장마감 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잔디밭이 넓게 깔려있는데 관리가 상당히 잘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2층 건물로 되어 있는 중명전의 건축양식은 확실히 요즘 볼 수 없는 듯한 양식이었다. 우리나라 궁중안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덕수궁 별채로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자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외국사절 알현실로 표현되어있는데, 직접 중명전 내부에 있는 설명문에는 '외국인 클럽'이라고 일컫는 곳이었다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현재 보이는 외관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위 사진은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고종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군에 둘러싸여 강제적으로 체결하였다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밀랍인형이 있는줄 모르고 무심결에 봤다가 너무 진짜 같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중명전에 한 번 쯤 들러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대해 느껴보고 가는 것도 좋은 서울 나들이가 될 것 같다. 현장학습을 나온 중학생들도 보여 한 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괜히 중학생들은 피씨방에 가서 게임만 할거라는 편견이 있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ㅎㅎㅎ
아주 오랜만에 전자 키보드때문에 뒷전이 되어버린 피아노를 조율했다.

아침 일찍 조율사분께 연락드려 오늘 바로 해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았다. 능곡에 사무실일이 있으신 조율사 이셨다. 결과는 대만족. 한 번 조율을 받는데에는 업라이트 피아노는 최소 8만원이다. 어딜가나 그렇다. 8만원부터 시작일 뿐이지 8만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조율사 아저씨와 나눈 이야기>

피아노 조율은 6개월에 한 번씩 하는게 정상이라고 한다. 88개의 건반에는 각각 현이 달려있는데 이 현은 엄청난 세기의 장력으로 잡아당겨지고 있다. 피아노 한대에 그 장력의 세기를 더하면 성인 남자 수십(백?)명의 세기라고 한다. 조율사님은 그 장력을 버티기 위한 구조로 인해 피아노 무게가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센 장력이라 한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각 음들이 반음 이상 떨어지려면 피아노에따라 10년도 넘게 걸리지만, 중요한건 각 음들의 밸런스이다. 예를 들어 한 음은 10만큼 떨어졌는데 한 옥타브 위의 그 음이 15만큼 떨어져 있다면 밸런스가 무너져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우리집 피아노는 영창피아노이다. 삼익과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국내 피아노 회사이다. 90년대 초반 피아노 시장은 호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97년 IMF와 함께 영창은 위기를 맞았다. 2006년에는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명칭 역시 H현대산업개발 창업주의 두 형 김재영, 김재창의 끝 글자를 딴 것으로 현대산업개발과는 인연이 깊어보인다.

어쨌든 조율사 아저씨께 건반의 무게를 좀 무겁게 가능한지 여쭈어 보았다. 원랴는 건반 하나하나에 납으로된 추를 얹어 건반의 무게를 조절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최대한 손을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조율한지는 5년이 넘은 만큼 건반의 수평도 잘맞지 않았다. 가장 먼저하신 일이 건반의 수평을 맞추신건데, 낮아진 건반에는 아래에 사진에 보이는 천으로된 링같을걸 끼우셨다. 높아진 건반은 밑부분을 커터칼로 깎기도 하셨다. 사람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높낮이가 삐뚤빼뚤 제각각이던 피아노가 점점 제모습을 찾아갔다. 프로 미용사가 눈에 안보일정도로 가위질을 하듯 조율사 아저씨의 손놀림도 무척 빨랐다. 30년을 일하셨다고 하시는데 이런 사람들이 장인이 아닌가 싶었다.

조율사 아저씨는 한국조율사협회의 부회장이라고 하셨다. 지난주에는 일본 히마마츠에서 세계 조율사 포럼 같은 것이 열려 다녀오셨다고 하셨다. 내 피아노가 갑자기 호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고야에서 차로 두시간 정도 떨어진 하마마츠는 일본 악기 회사로 유명한 야마하와 카와이의 공장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야마하는 보급에서 최고급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악기 회사로는 최고이다. 그에 비교해 스타인웨이와 같은 회사는 너무 고급클래스의 악기만 만든다.

피아노 조율사 분들은 뭔가 비슷한 느낌이 있으신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보통은 평생을 그 직업만 하신 분이 대부분일 것이고, 악기와 같이 섬세한 도구를 다루는 직업이니 만큼 그 직업에서 오는 습관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 조율사 아저씨 역시 아주 섬세해보이시는건 당연할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셨다.



음정을 조율하는데에만 1시간이 걸리고 도합 2시간도 넘게 봐주셨다. 그것도 한 번도 앉지 않으시고 작업하셨다. 50대 중반의 나이시지만 나보다 더 건장한 체격을 지니신 이유가 있는것 같다.

피아노가 집 한 가운데에 있고 윗집도 있으니 약간 소리를 줄이는 팁도 알려주셨다. 바로 남는 이불이나 담요를 피아노 뒤의 울림판과 벽 사이에 끼우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작업까지 마치시고 돌아가셨다. 피아노를 쳐보니 아예 다른 피아노가 되어있었다. 건반 터치는 물론 음정과 음색까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치고 잘 아껴줘야겠다!

평소에도 시간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압박감은 완벽하게 시간을 다루기 힘듣 점을 깨달을 수록 점점 게으름으로 진화되어갔다. 어쩌면 내 게으름을 포장하기 위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핑계가 맞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었지만 곱씹어 볼수록 의미있는 생각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로 '할머니와의 산책'이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게 한 사건이다.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이 하루종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와 바깥 산책을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이다


근데 고작 이 30여분 남짓한 시간이 어떻게 그토록 심오한 '시간' 보내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었을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할 것을 쌓아두고 '해야지... 해야지...'라는 생각만 할뿐 결국 아무것도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이 대표적이다. 꾸준히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사람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이는 완벽주의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운동이라는게 내 일상과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회사일, 집안일,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시간을 침범해서는 안되는게 아닐까? 적당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통제를 완벽하게 하지 않는 이상 그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를 실패하는 첫 걸음을 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서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올라오셨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가족들이 일을 나간 사이에 할 수 있는건 TV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게 전부이다. 그런데 딱히 TV를 보며 웃음 지으시는 경우도 없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잠이 오면 앉은 자세로 꾸벅꾸벅 졸기만 하신다. 가끔 힘들게 일어나셔서 창밖도 멍하니 바라보신다.

"할머니 여기 한바꾸 돌고와도 되겠는데?"
"아이고 못해, 어디가 어딘지 몰라."
"그럼 나랑 나가서 한바꾸 돌고 오자. 날씨도 좋은데"

할머니도 답답하셨는지 점심에 뭣좀 먹고 그럼 가자고 하신다. 나는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할머니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가라는 말해 알았다고 한다.

식욕도 없으신 할머니가 왠일로 잘드신다. 심지어 맛있다고 까지 하신다. 외출 나가실 생각에 기운이 좀 나셨나 보다.

천천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간다. 바지는 갈아입지 않으셔서 혹시 바깥에서 앉으실걸 대비해서  돗자리를 챙겼다. 할머니와 손잡고 몇 발자국 걸으니, 사투리로 내가 어떠어떠하다라고 하신다. 계속 뜻을 몰라 캐물어보니 내가 살갑다 라는 뜻인거 같다.

아주 어릴때에는 날 키워주신적이 있지만 너무 어릴때라 기억에는 없다. 그 이후에도 자주 봬면 1년에 한번 대학교 이후부턴 3년에나 한번 봰것 같다. 당연히 단 둘이 손잡고 산책을 나간건 처음이다.


할머니는 계단이나 오르막길에서 내 손을 더 꽉 쥐셨다. 그 악력이 남아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지팡이와 할머니의 손 사이에 낀 내 손이 아플 정도였지만 너무 좋았다.

이렇게 보낸 30분이 전부이다. 벤치에도 10여분간 앉아 있었다. 내가 혼자서 한 낮에 집앞 놀이터 벤치에 나와 일광욕을 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은 무척 중하게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항상 시간을 보내는데에 있어 모든 일들을 나름대로 과제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들과 반대에 가까운 행동들을 했다.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하려 했다. 집앞을 나가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나갔다 오려고 하고, 음식을 사올때도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해서 바로 갖고온다. '얼른 다녀와서 빨리 다른 걸 해야지' 라는 생각이 뇌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할머니와 산책을 하며 시간을 오롯이 할머니의 산책이라는 목적하에 보냈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100퍼센트 당시 하고 있는 행동에 집중했다. '얼른 다녀와서 빨리 다른 걸 해야지' 라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넘어지지 않게 잘 잡아드려야하고, 할머니의 숨이 가빠지는걸 들어야한다. 그러면 걸음을 계산해서 언제 어디에 앉힐지도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들이 내가 '지금'을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게 했다. 이런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거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해진 시간을 분배하는 걸 효율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그 행동에 집중하는 것도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아닐까?



미국의 대표적 우파 언론인 벤 샤피로
1984년생 미국 LA태생으로 유대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작곡가이면서 모든 사람에게 친근하다고 한다. 그와 엘레베이터를 같이 타면 그의 친밀한 대화를 피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한다.
반면 어머니는 매우 실리주의적이 사람이며, 벤 샤피로의 성향에 그런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한다.
벤 샤피로를 처음 접한 영상이 있다.

벤 샤피로 vs 낙태 옹호론자
위 영상에서 벤 샤피로의 언어적 능력은 청중을 압도한다. 특히 저 낙태 옹호론자의 대화 방식을 정확히 꿰뚫어 그 주장을 넘어서서 대화 방식을 무참히 밟아버린다.

-요약-

낙태옹호론자() : 만약 장애인이 강간당하여 임신했는데도 낙태를 반대하나요?

벤 샤피로() : 인간이 처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방암까지 걸렸다고 가정해도 되겠네요.
 강간범은 거세하거나 사형에 처하여야 마땅.
도덕적 관점에서 낙태를 바라볼때, 그 문지는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님.
뱃 속의 것이 생명이냐 아니냐가 요점이다. 생명이라면 아무렇게나 할 수 없다.

(중략)

: 그러한 여성이 의료적 지원을 받기도 힘들고, 대학생이라면 학업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면요?

: 뱃 속 아이가 엄마의 생명을 실제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아기를 죽이는 것에 대한 도덕적 관점은 변하지 않는다.
두 가지 중요한 요점이 있다.
1. 무언가 끔찍한 걸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아기를 죽인다는 끔찍하기 위한 일이어서는 안된다.
2. 한계적인 상황을 상정해서 논쟁에 폭넓게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냥  "여성은 낙태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주장으로 시작한다면 정상적인 토론이 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잔체 낙태의 1%의 경우로 나의 죄책감을 시험해서 낙태를 광범위하게 지지하려고 한다.

(후략)

간추리면 위와 같다. 영상을 실제로 본다면 그의 속도감 있고 논리적인 언변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벤 샤피로가 말한 두가지 요점 중 두 번째 요점에서 그의 통찰력에 감탄하였다. 직접 상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 대화의 흐름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내려다 보는 듯했다.
그는 현재 방식으로는 논쟁을 할 이유가 없음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여 그녀의 대화 방식이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나도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그 사람의 대화 방식을 파악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벤 샤피로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있다. 실제로 만 17세부터 미국에서 최연소 칼럼니스트로서 활동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학창시절 2개 학년을 건너뛸 정도로 명석했다.

미국 정치논평 팟캐스트 회사 데일리 와이어를 운영하는 그는 직접 벤 샤피로 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 팟캐스트는 현재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Facts don't care about your feelings."
"팩트는 너의 기분을 신경쓰지 않는다."
-벤 샤피로의 캐치프레이즈
 그는 상대방과 토론을 할 때 상대의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깨닫게 해주어 자가당착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이는 샤피로가 상대방을 공격한다기보다는 상대방이 본질을 호도하는 대화가 샤피로에게 통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과정이다.

앞으로 벤 샤피로의 유명한 일화를 글로써 소개해야 겠다. 조던 피터슨과 함께 대화에 있어서는 본받을만한 논리력과 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찾아 기분이 들뜬다.


일산 웨스턴돔에 위치한 토끼정에 갔다. 한 2년 전쯤에 강남에서 크림카레우동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곳인데, 요즘에는 한산하다. 그래도 정말 퓨전한식을 먹고싶었던 터라 찾게 되었다.

 크림카레우동은 다른곳에서 먹어본 결과 내취향이 확실히 아니다는것을 깨달아서 과감히 안먹기로 했다. 근데 메뉴 선택에 미스가 있었다. 혹시 해물나베나 반반 숯불구이를 드실 분들은 참고바란다.

국물과 함께시켜먹고 싶어서 시킨 해물나베이다. 참고하세요 밥이 같이 안나와요. 그래서 별로에요. 너무 술안주 느낌이에요. 여기 밥집인데 술안주인줄 모르고 시켰네요.
맛자체는 괜찮다 너무 짜지않게 해물향을 느끼기에는 적절하다.

사실 이거 먹으러 간 거니 만족한다. 역시 밥은 안나오니 참고 바란다. 나는 날치알 토끼밥과 공기밥을 따로 추가해서 비벼먹었다. 샐러드도 듬뿍있어 모자르지 않게 고기와 곁들여먹을수 있다. 다만 고기가 너무 잘게 썰려있어 씹는 맛은 느끼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다.

무난했지만 별다른 소스가 없어서 아쉬웠다. 스팸밥이 차라리 나았을뻔 했다.

밑에 매실액이 잔뜩깔려있어 섞어마셔야한다. 꽤 맛이 진해서 골고루 잘 섞어주어야한다. 근데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았다. 매실 향이 상큼하게 더 났으면 좋았을 뻔.

총평 : 굳이 이렇게 시켜먹고싶은 메뉴가 따로있는데 아니라면 더 저렴한가격에 세트메뉴로 구성되어있는 메뉴를 고르는 걸 추천한다.

예비군 훈련에 대한 생각

정해진 장소에 군복과 군화를 꺼내입고 와서 평소에는 갖추지 않던 껄렁껄렁함을 뽐낸다.
총기, 탄띠, 방탄모를 지급받고 착석한다.
친구와 같이 온 사람들은 시끌벅적, 혼자 온사람은 시작도 전에 잠을 청한다.
아참, 핸드폰은 개인 양심에 따라 제출여부를 결정한다.
"핸드폰 안가져오셨어요?"
"차에 두고왔어요."
라며 물어보지도 않은 핸드폰의 위치까지 어색하게 실토한다. 대답을 들은 사람도 그냥 넘어간다.

향방작계훈련이라고 해서 여느때처럼 그저 동네 근처 공원에 가서 앉아있다가 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거점으로 버스를타고 이동한다고??총 6시간 훈련짜리인데?

"제시간에 맞춰서 돌아올 수 있나요?"
라며 용기있는 사람의 질문이 모두의 의문을 풀어준다.
예상치 못한 훈련이지만 아무렇지 않다.
여기서 두 부류로 나뉜다.
1.회사원
2.자영업자

1.회사원은 보통 출근하는 날이더라도 국가의 부름을 받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공가 처리되어 훈련날도 월급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

2.자영업자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가게를 맡는다면 대체자가 없을 경우 하루 장사를 못한다. 그렇지만 예비군 훈련 때 나오는 돈은 고작 도시락값 6,000원.

다들 받아들인다. 지금 나와 같이 예비군 받는 사람들은 군인 시절 연봉 많아봤자 200만원 언저리 였을 것이다.

도착한 곳은 양주 산자락. 또 하필 오늘은 비가 온다. 대학 시절 우의를 입고 훈련을 받는 예비군들을 보며 불쌍하게 여겼는데, 오늘 내가 딱 그꼴이다. 우의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간다. (훈련 내용은 생략)

다들 껄렁함에다가 꿉꿉함을 표출하는 찌뿌린 표정으로 걷는다. 매번 느낀다.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
예를 들면
"오랜만에 지옥같은 현실에서 동떨어져 나와 비를 맞아도 젖지않는 우의를 입고 공기 맑은 곳에서 산책하고 있으니까 너무 좋다."

괜히 나도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처럼 강제로 자연을 느끼고 깨어있는 듯한 생각을 해본다.

지금 pc에서 작성 중이던 글을 임시저장했는데 모바일 앱과 크롬 브라우져를 통해 들어간 티스토리에서 그 글을 찾아볼 수가 없다ㅠㅠ

혹시나 해서 아예 비공개로 발행 한 뒤에 수정할까 했는데 역시나 그방법밖에 없는것 같다.

pc와 모바일을 오가면서 작성하려던 나로 하여금 불편을 느끼게 하다니..

임시저장한 글을 디바이스 구분없이 접근가능할수있으면 좋겠다... 일단 실험을 더 해봐야지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해 꾸준히 적어볼 생각이다.

요즘 삶에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보통 우리는 '해야할 것'이 있으면 의무감을 갖고 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얼른 끝내고 놀고 싶다'가 대부분일 것이다.

만약 그 '해야할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면,

'이걸 잘 마무리 하고, 놀고 싶다'로 되겠지?

 

'놀고 싶다'라는 말은 내게 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시간에 제약 받지않고 생활 하는 것에 가깝다.

한 3일간 이렇게 놀고 나면 또 다시 이런 생각이 든다.

'뭔가 제대로 하고싶어, 요즘 재밌는게 없는데 뭘 해야 할까?'

지금이 그 때 이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 써 나가는 습관을 통해 

이 시기를 보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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