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전자 키보드때문에 뒷전이 되어버린 피아노를 조율했다.

아침 일찍 조율사분께 연락드려 오늘 바로 해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았다. 능곡에 사무실일이 있으신 조율사 이셨다. 결과는 대만족. 한 번 조율을 받는데에는 업라이트 피아노는 최소 8만원이다. 어딜가나 그렇다. 8만원부터 시작일 뿐이지 8만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조율사 아저씨와 나눈 이야기>

피아노 조율은 6개월에 한 번씩 하는게 정상이라고 한다. 88개의 건반에는 각각 현이 달려있는데 이 현은 엄청난 세기의 장력으로 잡아당겨지고 있다. 피아노 한대에 그 장력의 세기를 더하면 성인 남자 수십(백?)명의 세기라고 한다. 조율사님은 그 장력을 버티기 위한 구조로 인해 피아노 무게가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센 장력이라 한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각 음들이 반음 이상 떨어지려면 피아노에따라 10년도 넘게 걸리지만, 중요한건 각 음들의 밸런스이다. 예를 들어 한 음은 10만큼 떨어졌는데 한 옥타브 위의 그 음이 15만큼 떨어져 있다면 밸런스가 무너져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우리집 피아노는 영창피아노이다. 삼익과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국내 피아노 회사이다. 90년대 초반 피아노 시장은 호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97년 IMF와 함께 영창은 위기를 맞았다. 2006년에는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명칭 역시 H현대산업개발 창업주의 두 형 김재영, 김재창의 끝 글자를 딴 것으로 현대산업개발과는 인연이 깊어보인다.

어쨌든 조율사 아저씨께 건반의 무게를 좀 무겁게 가능한지 여쭈어 보았다. 원랴는 건반 하나하나에 납으로된 추를 얹어 건반의 무게를 조절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최대한 손을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조율한지는 5년이 넘은 만큼 건반의 수평도 잘맞지 않았다. 가장 먼저하신 일이 건반의 수평을 맞추신건데, 낮아진 건반에는 아래에 사진에 보이는 천으로된 링같을걸 끼우셨다. 높아진 건반은 밑부분을 커터칼로 깎기도 하셨다. 사람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높낮이가 삐뚤빼뚤 제각각이던 피아노가 점점 제모습을 찾아갔다. 프로 미용사가 눈에 안보일정도로 가위질을 하듯 조율사 아저씨의 손놀림도 무척 빨랐다. 30년을 일하셨다고 하시는데 이런 사람들이 장인이 아닌가 싶었다.

조율사 아저씨는 한국조율사협회의 부회장이라고 하셨다. 지난주에는 일본 히마마츠에서 세계 조율사 포럼 같은 것이 열려 다녀오셨다고 하셨다. 내 피아노가 갑자기 호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고야에서 차로 두시간 정도 떨어진 하마마츠는 일본 악기 회사로 유명한 야마하와 카와이의 공장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야마하는 보급에서 최고급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악기 회사로는 최고이다. 그에 비교해 스타인웨이와 같은 회사는 너무 고급클래스의 악기만 만든다.

피아노 조율사 분들은 뭔가 비슷한 느낌이 있으신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보통은 평생을 그 직업만 하신 분이 대부분일 것이고, 악기와 같이 섬세한 도구를 다루는 직업이니 만큼 그 직업에서 오는 습관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 조율사 아저씨 역시 아주 섬세해보이시는건 당연할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셨다.



음정을 조율하는데에만 1시간이 걸리고 도합 2시간도 넘게 봐주셨다. 그것도 한 번도 앉지 않으시고 작업하셨다. 50대 중반의 나이시지만 나보다 더 건장한 체격을 지니신 이유가 있는것 같다.

피아노가 집 한 가운데에 있고 윗집도 있으니 약간 소리를 줄이는 팁도 알려주셨다. 바로 남는 이불이나 담요를 피아노 뒤의 울림판과 벽 사이에 끼우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작업까지 마치시고 돌아가셨다. 피아노를 쳐보니 아예 다른 피아노가 되어있었다. 건반 터치는 물론 음정과 음색까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치고 잘 아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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