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시간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압박감은 완벽하게 시간을 다루기 힘듣 점을 깨달을 수록 점점 게으름으로 진화되어갔다. 어쩌면 내 게으름을 포장하기 위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핑계가 맞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었지만 곱씹어 볼수록 의미있는 생각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로 '할머니와의 산책'이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게 한 사건이다.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이 하루종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와 바깥 산책을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이다


근데 고작 이 30여분 남짓한 시간이 어떻게 그토록 심오한 '시간' 보내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었을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할 것을 쌓아두고 '해야지... 해야지...'라는 생각만 할뿐 결국 아무것도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이 대표적이다. 꾸준히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사람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이는 완벽주의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운동이라는게 내 일상과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회사일, 집안일,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시간을 침범해서는 안되는게 아닐까? 적당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통제를 완벽하게 하지 않는 이상 그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를 실패하는 첫 걸음을 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서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올라오셨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가족들이 일을 나간 사이에 할 수 있는건 TV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게 전부이다. 그런데 딱히 TV를 보며 웃음 지으시는 경우도 없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잠이 오면 앉은 자세로 꾸벅꾸벅 졸기만 하신다. 가끔 힘들게 일어나셔서 창밖도 멍하니 바라보신다.

"할머니 여기 한바꾸 돌고와도 되겠는데?"
"아이고 못해, 어디가 어딘지 몰라."
"그럼 나랑 나가서 한바꾸 돌고 오자. 날씨도 좋은데"

할머니도 답답하셨는지 점심에 뭣좀 먹고 그럼 가자고 하신다. 나는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할머니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가라는 말해 알았다고 한다.

식욕도 없으신 할머니가 왠일로 잘드신다. 심지어 맛있다고 까지 하신다. 외출 나가실 생각에 기운이 좀 나셨나 보다.

천천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간다. 바지는 갈아입지 않으셔서 혹시 바깥에서 앉으실걸 대비해서  돗자리를 챙겼다. 할머니와 손잡고 몇 발자국 걸으니, 사투리로 내가 어떠어떠하다라고 하신다. 계속 뜻을 몰라 캐물어보니 내가 살갑다 라는 뜻인거 같다.

아주 어릴때에는 날 키워주신적이 있지만 너무 어릴때라 기억에는 없다. 그 이후에도 자주 봬면 1년에 한번 대학교 이후부턴 3년에나 한번 봰것 같다. 당연히 단 둘이 손잡고 산책을 나간건 처음이다.


할머니는 계단이나 오르막길에서 내 손을 더 꽉 쥐셨다. 그 악력이 남아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지팡이와 할머니의 손 사이에 낀 내 손이 아플 정도였지만 너무 좋았다.

이렇게 보낸 30분이 전부이다. 벤치에도 10여분간 앉아 있었다. 내가 혼자서 한 낮에 집앞 놀이터 벤치에 나와 일광욕을 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은 무척 중하게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항상 시간을 보내는데에 있어 모든 일들을 나름대로 과제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들과 반대에 가까운 행동들을 했다.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하려 했다. 집앞을 나가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나갔다 오려고 하고, 음식을 사올때도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해서 바로 갖고온다. '얼른 다녀와서 빨리 다른 걸 해야지' 라는 생각이 뇌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할머니와 산책을 하며 시간을 오롯이 할머니의 산책이라는 목적하에 보냈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100퍼센트 당시 하고 있는 행동에 집중했다. '얼른 다녀와서 빨리 다른 걸 해야지' 라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넘어지지 않게 잘 잡아드려야하고, 할머니의 숨이 가빠지는걸 들어야한다. 그러면 걸음을 계산해서 언제 어디에 앉힐지도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들이 내가 '지금'을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게 했다. 이런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거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해진 시간을 분배하는 걸 효율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그 행동에 집중하는 것도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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