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아이유)가 후계동으로 같이 퇴근하는 장면은 12화가 되기전에도 여러 장면 나왔었다. 그런데 마침내 12화가 되서야 정말 자연스러운 퇴근장면이 나온 것 같다. 진짜 회사원 동료가 같이 퇴근하는 느낌 말이다.
그런데 추가로 동료의 친구들(후계동 사람들)까지 합세하니 그 '따뜻함'이 완성되었다. 이지안은 여태 느껴본적 없을 따뜻함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녹으면서 감사 인사를 하기까지에 이른다.

처음보는 이지안을 반갑게 맞이하는 정희. 드라마 중반부를 넘어서부터 정희에 대한 초점과 비중이 높아져서 사실 의아했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진행과 동떨어져있는 그 과거를 시청자들이 알아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후반부에 아이유의 마음을 톡톡 건드는 사람은 정희였다. 정희는 이지안이 박동훈 부장에게는 하기 힘든 말을 꺼내게 주기도 했다.

스스로를 비참한 여자라 입이 닳도록 말하던 정희는 이지안을 보고 어떤 공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첫 인사는 반가움 100% 담긴 인사를 건낸다. 미적지근한 이지안의 반응에도 살갑게 다가간다. 이지안의 이야기를 애써 끌어내려 하지도 않는다. 나중에 가서는 이지안이 먼저 정희에게 자신의 사연을 묻지 않는 걸 궁금해한다.

정희는 과거 사랑하던 남자가 스님이 되서인지 스님의 마음으로 이지안을 치유해 주는 듯하다. 서두르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준다.

정희와 더불어 박동훈의 술친구 아저씨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이미 한잔씩들 걸친 아저씨들은 평소의 이지안이라면 거들떠볼 대상도 아니지만, 어쩐지 자신을 회사 동료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처음인지라 인사를 건넨다.
후계동 주민이라는 말에 아저씨들은 이지안이 외진 곳이 산다는 걸 알게되고, 이왕 가는김에 박동훈과 그 일행들이 데려다 주게 된다. 이때 포착한 장면이 정말 기억에 많이남는다.

지안에게 팔짱을 낀 정희. 박동훈 삼형제. 후계동 아저씨들. 이 사람들이 이지안이 집까지 가는 길을 함께 걷는다. 드라마 초반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이렇게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이 초반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장면일때 집중된다.
이지안은 이 상황이 어색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잔씩 걸친 우리 후계동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지안에게 말을 건다.

집 앞에 다다르자 후계동 아저씨들은 맞은 편에 사는 조기축구 동생을 냅다 부른다. 그 동생에게 이지안의 집이 위험하니 감시좀 하라고 이른다. 가볍게 말하지만 이런 배려가 이지안에게는 어색하기만 하다. 후계동 아저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여기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 것이다.

혹시 만나게 될 다음을 기약하고 박동훈과 일행들은 이지안에게 인사를 하고 떠난다. 그때까지도 이지안은 한 마디 못하다가 마침내 입을 뗀다.
"감사합니다.."
여리디 여린 목소리이다. 할까 말까 하다가 터뜨린 목소리지만 들릴듯 말듯 하다.

박동훈 형 - "예 잘자요 또봅시다~"
이런 말도 이지안은 들어본지 오래 되었을 것이다.
이지안은 꾸벅 고개를 깊게 숙인다.
 박동훈은 속으로 놀란다.

어쩌다가 벌어진 상황에 안보이던 모습을 보이는 이지안이 놀랍다. 이제 이 아이도 진심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느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16화 통틀어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냉혈한처럼 보이던 이지안도 보통 그 나이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구나. 이지안도 감사를 느낄 수 있구나. 더 이상 남들의 호의를 의심하지 않는구나.

더불어 나도 삶을 살아가면서 '가족과 연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저러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가족과 연인에게는 어느정도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암묵적인 룰이 있으며 그 안에서 모든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저렇게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우연히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느끼는 "낯선 따뜻함"을 느끼는 밤이 온다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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